히말라야의 만년설 아래 평온을 유지하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서 한국인 24명이 현지 사법당국에 전격 체포되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순수한 여행을 목적으로 발급받은 합법적 체류 자격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허가되지 않은 집회를 조직하고 선교 행위를 지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권 국가가 정한 출입국 관리 규범을 어겼다면 법률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네팔 사법당국의 엄정한 법 집행 역시 타국의 주권과 공공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국제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온당하고 불가피한 조치로 여겨진다. 현지 언론과 국내 여론 역시 규정을 위반한 관광비자 종교활동의 절차적 흠결을 지적하며, 국가적 위신을 실추시킨 경솔한 행동에 대해 일제히 준엄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이들의 행동 저변에 자리 잡은 순수한 종교적 열정과 헌신을 헤아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낯선 기후와 척박한 환경을 마다하지 않고 자비(自費)를 들여 복음을 전하겠다는 신앙적 사명감은, 세속적 잣대만으로는 온전히 재단하기 어려운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미지의 땅에 신의 사랑을 심겠다는 그들의 진정성은 오랜 세월 동안 종교사(宗敎史)의 기념비적 미덕으로 칭송받아 왔기에, 그 뜨거운 신앙적 충동 자체를 섣불리 폄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선한 동기에서 출발했으니, 비자 제도의 형식적 조항을 다소 가볍게 여긴 것 역시 신앙인의 순진한 과실로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온정적 시선 또한 우리 사회 일각에 엄연히 잔존한다.
그러나 이처럼 정당한 법 집행과 순수한 신앙심이라는 양자택일의 안락한 구도에 머무르는 순간, 우리는 지극히 기만적인 상식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비자라는 형식은 단순한 출입국 행정 양식이 아니라, 한 문명이 외부인을 맞아들일 때 요구하는 최소한의 상호 존중과 신뢰의 계약이다. 여행자로서 경치를 감상하고 문화를 체험하겠다는 서약을 내걸고 입국한 뒤, 은밀하게 포교 거점을 마련하는 행위는 법률의 기술적 위반을 넘어 상대 사회를 향한 근원적인 기만이다. 만약 신의 부르심이 그토록 절대적이고 거룩하다면, 왜 그것을 증명하는 첫걸음은 거짓 서약과 법망의 우회라는 가장 세속적이고 비겁한 탈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가? 거룩한 목적을 위해 부정한 수단을 정당화하는 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진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깊은 모순은 그들이 ‘선교 대상’으로 삼은 현지인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대하는 시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힌두교와 불교가 수천 년간 공존하며 피워낸 네팔 고유의 찬란한 문화와 사유의 체계는, 그들의 시야 속에서 단지 ‘어둠에 갇혀 구원받아야 할 미신’이자 ‘깨부수어야 할 우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들의 경전과 교리만이 우주 유일의 진리라는 맹목적 확신은, 타자가 쌓아 올린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숨결을 무가치한 것으로 손쉽게 폐기 처분한다. 낯선 땅의 문화를 환대하고 이해하려는 겸허함 대신 오직 굴복시키고 개종시켜야 할 정복의 대상군으로 바라보는 이 오만한 이분법은, 과연 신의 자비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절대화한 자들의 영적 식민주의인가? 우리는 이 기괴한 확신 앞에서 도덕적 현기증과 함께 깊은 아포리아에 부닥치게 된다.
인류의 지성이 진화하고 세계가 상호 연결되면서 종교 또한 타자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갱신해야 마땅한 시대에 도달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이들은 여전히 낡은 도그마의 요새에 갇혀, 자신들의 신념만이 무오류라는 환상 속에서 타 문화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행태를 반복하는가? 그것은 숭고한 신앙의 실천이 아니라, 타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영혼의 자율성을 무참히 훼손하는 광신도적 파괴행위이자 문화에 대한 폭력적 강요와 무엇이 다른가. 스스로의 절대성을 증명하기 위해 타자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성립하는 신념이라면, 그것은 이미 구원의 빛이 아니라 파멸을 부르는 영적 침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카트만두의 골목길마다 수백 년을 이어온 향(香) 냄새가 바람을 타고 히말라야의 능선으로 흩어진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초월을 노래하며 고단한 삶을 위로해 온 타자의 기도는, 정복자의 깃발 아래 지워져야 할 오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한 인류의 유산이다. 닫힌 귀와 굳은 혀로 쏟아내는 일방적 복음보다, 낯선 땅의 흙먼지 속에서 타인의 호흡을 먼저 듣는 겸손함이야말로 진정한 거룩함에 가깝지 않겠는가. 성급한 확신을 거두고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비워낼 때 비로소 드러나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신념이라는 이름의 무모한 횡포는 부끄러운 침묵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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